점프슛의의 탄생
오늘날 최고의 슈터로 불리는 선수들의 점프슛은 많은 이들에게 ‘그림 같은 광경’이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무릎을 사용해 공중에 떠올라 한 손으로 슛을 던지는 모습은 1950년 이전만 해도 ‘추잡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루이세티에게서 시작된 원 핸드 점프슛
원 핸드 점프슛을 세계 최초로 시도한 인물은 안젤로 ‘행크’ 루이세티 Angelo Luisetti로 기록되어 있다. 행크 루이세티(1916~2002)는 AP 연합통신이 선정한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선수 2위(1위는 조지 마이칸)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다. 양손으로 점프하지 않고 던지는 일명 ‘세트 슛’을 당연시하던 때에, 루이세티는 달리면서 한 손으로 슛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이 슛을 시도할 때만 해도 전문가들은 ‘쓰레기’라 폄하했다. 그러나 두 손으로 던지는 것보다 한 손으로 던지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며, 효율적이라는 것이 입증되면서 루이세티의 슛은 농구 역사상 최고의 혁명 중 하나로 남는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그는 평균 16.1 득점을 기록하며 1937년과 1938년에 대학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 1938년 1월에 열린 뒤킨스 대학과 펼친 경기에서는 개인득점 50점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 (92:27)로 이끌었다. 대학선수가 한 경기에서 50점을 기록하긴 루이세티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의 득점 방식이 ‘정통’으로 자리 잡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30~1940년대 최고 농구 지도자로 여겨지던 냇 홀먼Nat Holman은 “우리 선수들 중 누구라도 원 핸드 점프슛을 배운다면, 난 그 날로 농구를 그만둘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고, 농구교본 저술에 전념하고 있는 농구원로 이우재 선생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 때만해도 지금처럼 원 핸드 점프슛이니 플로터니 그런 기술이 없었다. 여자 선수들의 농구와는 달랐지만 투 핸드슛을 주로 사용했다. 지금 농구 기술은 그 당시보다 훨씬 정교해졌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당시는 공격도 수비도 어지간해서는 점프하지 않았다. 한 기자는 “1940년대까지 감독들의 철학은 ‘좋은 선수는 수비든 공격이든 절대 발을 떼지 않는다’였다”고 술회했을 정도니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많은 선수들은 선 상태에서 언더핸드Under Hand(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자유투를 던지던 자세)로 슛을 던지다가 여자농구선수처럼 가슴에서 밀어 던지는 형태로 자세를 바꿨고, 이 자세는 1930~1940년대까지도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때는 화려한 동작보다 사람이 슛을 던져서 림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운 구경거리였다. 그때는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1940년대부터 체육기자로 활동해 온 조동표 선생의 말이다.
슈터들의 등장
NBA 프로농구에서 이런 인식을 최초로 바꿔놓은 인물은 바로 ‘점핑 Jumping Joe’ 조 펄크스Joe Fulks다. 별명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NBA에서 가장 먼저 ‘점프한’ 인물이다. 비록 그의 슛도 투 핸드에 가까웠지만 슛을 던질 때 점프해서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자세가 귀 옆에서부터 공을 밀어내는 투포환처럼 우스꽝스럽다며 ‘Ear Shot’이라 불리는 등 폄하되기도 했지만, 성공률은 대단히 높았으며 곧 대중화되었다. 게다가 ‘점프하면 안 돼’라는 고정관념이 박힌 수비수들 역시 펄크스를 막는 데 곤욕을 치렀다.
비록 움직이다가 갑자기 점프해서 던지는 슛이었기에 성공률은 25.9%에 그쳤지만 막기 어려웠기 때문에 동료들의 집중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펄크스는 NBA 초대 챔피언이었던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의 우승(1947년)에 기여했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930년대 루이세티와 1940년대 펄크스 덕분에 농구인들은 원 핸드 점프슛 연구를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이들의 원 핸드슛이 지금 우리가 던지고 있는 형태로 발전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다양한 형의 선수들과 자웅을 겨룬 선수들은 먼저 무릎을 사용해 점프를 한 후 공을 던지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럽에서도 1950년대 중반부터 원 핸드 점프슛이 전파되어 각 나라 감독들이 원 핸드 점프슛을 연습하는 명문팀들의 훈련을 참관했다고 한다.
한국 농구, 원 핸드 점프슛을 만나다
한국 농구에 원 핸드 점프슛을 전수한 이는 루이세티의 스승, 존 번John Bunn이었다. 1955년 한국 농구는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했고, 그 의욕은 결국 외국인 코치 영입으로 이어졌다. 그가 바로 캔자스(1921~1930), 스탠포드 (1930~1938) 대학에서 맹위를 떨친 번이었다. 번은 경복고 코트에서 연습하며 원 핸드 점프슛을 전파했다.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지만 원 핸드가 투 핸드보다 자세를 잡는데 0.3~0.5초 정도 빠르며, 점프하기 때문에 막기 힘들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와 더불어 슈팅 자세와 각도 등에 관한 이론도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역사를 돌이켜볼 때,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아 우리 것으로 만들고자 한 움직임은 과거에 더 적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슛의 발전사
수비 발전을 불러온 점프슛
농구는 1954년 NBA가 공격을 24초안에 끝내야 한다는 24초 규칙을 만들면서 더욱 속도감을 더했고, 공격자들도 이에 맞춰 더욱 발전된 개인기를 선보였다. 그러자 수비수들도 바빠졌다.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수비수들의 발을 바닥에서 떼어놓았다. 초창기 농구인들 사이에서 금지된 점프가 농구의 일부가 된 것이다. 슬레이터 마틴 Slater Martin(레이커스), 멜 헛친스Mel Hutchins(피스톤스) 등은 점프슈터를 수비할 때, 공격하는 선수의 얼굴 앞에 손을 갖다 대 시야를 방해하고, 그가 점프할 때 함께 뛰면 성공률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준 인물들로 평가된다. 특히 마틴은 마이칸을 도와 LA레이커스가 다섯 차례 NBA 우승(1950, 1952, 1953, 1954, 1958)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
여기서부터 역사가 더 재미있어진다. 이러한 수비수들을 떼어놓기 위한 슈터들의 움직임도 다양해진 것이다. 슈터 전술은 1960~1980년대 사이에 조금씩 기틀을 잡아갔다. 보스턴셀틱스가 대표적인 팀으로 명예의 전당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밥 쿠지와 빌 셔먼은 오픈 찬스를 잡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고, 슛 거리를 늘려가며 수비를 당황케 했다. (그 당시에 3점슛은 없었다)점프슛이 발전하면서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도 함께 빛났다. 1960~1974년까지 선수로 뛰면서 ‘미스터 클러치Mr.Clutch’라는 별명을 얻은 제리 웨스트Jerry West는 점프슛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무척 빠르고, 드리블도 좋았기에 개인기로 상대를 흔들다 멈춰서 점프슛을 날렸으며, 정확도도 무척 뛰어났다. 웨스트는 점프의 정점에서 슛을 던지면 더 정확하고 막기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인물로 남았다. 사람들은 그 슛을 ‘스탑앤팝Stop-And-Pop(갑자기 멈춘 후 점프해서 슛을 던지는 동작)’이라 불렀다. 한국에서는 신동파가 큰 키와 탄력을 이용해 최고 슈터로 거듭났다. 시대가 흐르면서 수비자를 속이거나 피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페이더웨이 점프슛Fadeaway Jumpshot도 등장했다. 수비자를 피해 뒤로 점프하면서 던지는 슛으로 블록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NBA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1995년 복귀 후 자주 사용한 슛이다. 오늘날에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자주 사용하며, 한국에서는 은퇴한 ‘사마귀슈터’ 김영만과 추승균의 주무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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