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선수들의 투쟁

현재 NBA 프로농구를 주도하는 것은 흑인선수이다. 어시스트와 스틸, 자유투 성공률 등 몇 개 부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순위에서 역대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흑인선수이다. 2007년 현재 연봉 순위에서 선두를 달리는 선수들 또한 대부분 흑인선수이다. 이처럼 흑인들이 농구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유는 다른 인종보다 운동능력, 스피드, 근육 등에서 월등히 앞서있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순발력과 민첩함뿐만 아니라, 지구력이 필요한 마라톤과 같은 육상 종목에서 케냐, 에티오피아 출신의 흑인들이 돌풍을 일으키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흑인들이 지금처럼 백만장자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통념처럼 여겨졌던 인종차별주의는 농구에서도 흑인들을 끼워주지 않았다.

흑인선수들의 수난

“우리가 이길수록 팀은 더 힘들어져요.”

1966년 NCAA(미국대학농구) 패권을 차지한 텍사스 웨스턴 대학 선수들의 말이다. 텍사스 웨스턴 대학은 흑인 다섯 명이 주전으로 우승한 최초의 농구팀이다. 1956년에 우승한 샌프란시스코 대학(빌 러셀과 KC 존스), 1962년에 우승한 신시내티 대학(오스카 로버트슨)에도 30~40년 뒤 농구선수들이 존경하게 된 흑인 전설들이 몸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처럼 흑인이 농구 경기에 필요한 다섯 자리를 모두 맡은 팀은 미국 남부지방에서 최초였다.

그들이 우승을 거머쥐기까지는 혹독한 수난을 겪어야 했다. 원정 경기에서 폭행을 당하는가하면, 숙소가 난도질당하는 설움도 겪는다. 흑인들을 출전시킨 감독은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고, 백인동료들도 흑인동료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그러나 이들이 시련과 좌절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른 길은 대단히 극적이다. NCAA 토너먼트는 상위권에 오를수록 전국의 관심을 많이 받기 마련이다. 결승전은 한때 프로농구 결승전보다도 인기가 높아 전국에 방송될 정도였다. 그런 큰 무대에 흑인들이 다가가고 있으니 주변의 견제는 더 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급기야 선수들은 “우리가 이길수록 팀은 더 힘들어져요”라며 울음을 터트리기에 이른다.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글로리 로드」는 이러한 실화를 영화로 재구성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은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였다. 오늘날 상황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NBA 흑인선수들은 「글로리 로드」를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 DVD로 소장하고 있다는 선수들도 많다. “그때 선수들이 열심히 투쟁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며 말이다. 실제로 ‘백인 우월주의자’로 불린 아돌프 럽 감독이 지도하고, 백인 다섯 명이 주전으로 나선 켄터키 대학을 상대로 우승을 거둔 1966년의 성공을 바탕으로 농구인들은 흑인들의 기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1985년까지 각 팀이 보유한 흑인 선수의 숫자는 2.9명에서 5.7명으로 증가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점프슛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손에 익히는 과정에서 새 기술은 늘 보수파의 반발에 부딪쳐 그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넓은 시야를 지닌 백인 감독과 흑인 스타들은 흑인 선수들이 머리가 나쁘지 않고, 불량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인종차별은 대단히 심각했다. 1964년 미국인권법(Civil Right Act)은 겉으로는 많은 것을 바꿔놨지만, 사람들 머릿속에 잠재된 ‘흑과 백’ 의식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추어와 프로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마다 정도는 달랐지만 대다수가 편견과 핍박 속에서 힘든 세월을 견뎌야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리멤버 타이탄」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미식축구팀 타이탄의 흑인 선수들은 뛰어난 활약에도 백인들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다. 「글로리 로드」텍사스 웨스턴 대학의 선수들은 어떤가? 팀원 12명 중 7명이 흑인이었던 그들은 원정길에서 오물을 뒤집어썼고, 기껏 다져놓은 팀워크는 현실 속 인종차별로 무너질 위기를 맞는다. 영화 속 상황은 허구가 아니다. 무려 11차례나 우승을 거머쥐며 NBA 역사에 획을 그은 센터, 빌 러셀조차도 동료들과 같은 호텔 방을 쓰지 못했고, 밥도 먹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런 그를 위해 레드 아워백 감독은 “리바운드와 수비에 충실하라”고 지시했다. 궂은일을 통해 동료들의 플레이를 도우면서 인정을 받으란 의미였다. 아워백은 동시에 “러셀의 리바운드 하나를 득점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며 그들을 역대 최고의 농구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어떠한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로 유명한 알리는 61전 56승(37KO승) 5패의 위대한 복서로 추앙 받았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어도 백인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는 설움을 받았다. 그는 평소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서슴없이 거론하는 편이었는데, 이에 대한 철퇴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라는 영장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알리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출국금지 당하는 등 매국노 취급을 받기도 했다. 훗날 그는 UN 평화상(2005년)을 받으며 설움을 보상받았지만, 그만큼 백인 사회에서 유색 인종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1974년에 NFL 최초로 흑인 주전쿼터백이 된 조 질리엄은 피츠버그를 슈퍼볼에 올려놓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마약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고 NFL 선수 경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편견을 이기다

농구는 탄력으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다. 초창기 농구는 점프를 금했다. 학교 여가활동에서 시작된 운동이었기에 흑인의 참여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흑인의 탄력과 운동능력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길거리에서 농구를 즐기는 흑인들이 많아졌지만, 학교 지도자들이나 관계자들은 흑인 농구를 ‘Nigger Ball’이라 부르며 “흑인들은 빠르기만 하고 머리가 나빠서 농구를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실제 1966년 텍사스 웨스턴 대학을 이끈 돈 해스킨스 감독은 “기자들은 내게 ‘흑인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골치 아프진 않으십니까?’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초창기 유능한 센터가 언급될 때 흑인들의 이름이 간혹 보여도, 유능한 포인트가드를 언급할 때 흑인들이 빠져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흑인들 중에는 고등학교까지만 농구를 하고 공장에 취업하거나, 길거리 농구에서 도박성 농구와 마약판매로 돈을 번 이들도 있었다. 불과 1960~1970년대의 이야기다.

더 옛날에는 어땠을까? 흑인이 본격적으로 ‘승자’이자 ‘흥행 메이커’로 자리 잡은 것이 1960년대의 일이지만, 1950년 10월 31일에 NBA 프로농구에 처음 흑인이 등장했다. 워싱턴 캐피털스에 입단한 얼 로이드는 NBA에 가장 먼저 등장한 흑인선수다. 그는 당시 상황을 “가면을 쓰고 나타난 사람처럼 쳐다봤다”고 설명한다. 그를 비롯해 1950년에는 척 쿠퍼와 케이트 클리프튼 등 세 명의 흑인이 데뷔했는데, 그들은 대단히 치욕적인 경험을 했다. 관중들은 로이드가 백인 동료와 어깨동무를 했다는 이유로 침을 뱉었다. 그들은 같은 호텔에서 지내지 못했다. 흑인을 받아주는 호텔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인 동료들 가운데는 ‘법과 제도’가 허락하는 아래 흑인들을 감싸주려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 시선은 이마저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얼 로이드는 4년 뒤인 54/55 시즌, 시라큐스 내셔널스에서 NBA 타이틀을 획득하며 NBA 우승을 거머쥔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됐다. 또 71/72 시즌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감독이 되면서 NBA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비록 NBA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운 선수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NBA 대부분의 기록들을 흑인의 손으로 쓸 수 있었다. 흑인이 백인보다 빠르고 민첩하다는 사실이 세월이 지나면서 입증되었다. 흑인은 백인들보다 더 화려하게 패스했고, 더 높이 날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기를 재밌게 만들었다. 팬들은 그들의 화려함에 매력을 느꼈고, NBA와 구단주, 감독들은 결국 그들이 고집해 오던 ‘백인식 농구’가 더는 팬들을 끌어당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참조 : 점프슛의 탄생과 슛의 발전사 1편